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나리타 국제공항 (문단 편집) === 철거민 투쟁으로 인한 알박기 공항 구조 === 원래 나리타 국제공항은 후보지가 [[도미사토시]]였던 최초 계획 당시 '''활주로 5개'''라는 가히 [[게르마니아]] 급의 [[크고 아름다운]] 계획으로 출발했고, 이후 [[나리타시]]로 후보지를 변경하는 세부 계획 과정에서 재조정을 거쳐 '''만약''' 계획대로 차질없이 건설되었다면 활주로 3개를 건설할 계획이었고 향후 4개로 확장할 수 있는 구조였다. 실제로 나리타 국제공항을 구글 지도 등으로 보면 현재 활주로나 다른 유도로들의 총 거리나 부지 면적을 어림잡는다고 해도 4,000m급 활주로 4개 정도는 충분히 나올 부지를 가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토지의 강제 수용 및 강제 퇴거에 대한 주민과 운동권 학생들의 격렬한 저항으로 3개의 활주로 건설은 이루어지지 못했다. [[나리타 국제공항/건설 역사]]에서 언급된 지역민을 무시한 독단적인 공항 설립 계획과 미미한 토지 보상을 두고 주민들은 반발했는데, 문제는 이 지역민들이 [[히키아게샤]], 쉽게 말하면 [[제2차 세계대전]]기 일본제국의 식민지화 정책에 의해 일본 본토 밖에서 살다가 일본제국이 패망하면서 돌아온 사람들이었다는 거다. 여기에 [[전학공투회의]] 등 좌파 학생 세력들이 대거 가세하여 훗날 "전학련 최후의 투쟁"이라고 불릴 정도의 엄청난 폭력 투쟁이 발발했다.([[나리타 투쟁]]) 정부는 [[대집행]] 같은 반민주적 강경 진압을 강행했고, 주민과 학생들은 토지 보상 자체를 거부하고 버티기에 들어갔다. 그들은 토지보상 위원회장을 습격하고, 공항 시설을 파괴하고, 열차에 방화하는 등 폭력, 테러, 방화, 파괴 행위를 일삼았다. 그렇게 나리타 국제공항은 토지 매입이 되지 않아 공항 부지 내 여러 곳에 가정집, 신사, 감시소 등이 남아있다. 수십 년이 지나면서 일부는 사라졌지만, 아직도 여러 사유지가 공항 내에 남아있다. [[http://maps.google.com/maps?oe=UTF-8&ie=UTF8&q=narita+airport&fb=1&hq=narita+airport&hnear=narita+airport&cid=0,0,1024260645107185306&ei=s7FjTK2lLMeecfC30JYF&ved=0CEIQnwIwAw&ll=35.76887,140.392141&spn=0.029632,0.071368&t=h&z=15|구글 지도로 본 나리타 공항]] * 터미널 남서쪽에 있는, 그나마 정상적으로 보이는 A활주로 (16R/34L). * 터미널 북쪽에 있는 B활주로 (16L/34R). 터미널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유도로를 통해서나 연결된다. 또 민가 때문에 휘어져 있어서 이쪽 활주로는 대형 항공기를 잘 못 굴린댄다. 그리고 남동쪽에 지어지다 만 300m어치 활주로가 민가를 사이에 두고 황량하게 남아 있다. 자세히 보면 비행기가 접근하는 활주로 코앞에 신사까지 하나 들어앉아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이 사이트를 보면 본래 계획한 B활주로와 토호신사의 관계를 간단히 알 수 있다. [[https://chinobouken.com/touhou/|100% 불심검문 당한다는 '토호신사', 그곳에는 나리타 공항의 여러가지 문제점이 숨겨져 있다.(일본어)]] || [[파일:attachment/나리타 국제공항/nari1.jpg|width=100%]] || [[파일:attachment/나리타 국제공항/nari2.jpg|width=100%]] || || '''{{{#FFFFFF 오른쪽 끝에 로손 편의점과 왼쪽 끝에 활주로, 중간에 토호신사(東峰神社)와 기동대}}}'''[* 토호신사 아래에 기동대(機動隊) ①과 ②로 표시된 곳이 병력이 배치되는 자리이다.]'''{{{#FFFFFF 의 움직임을 감시하는 감시초소(監視小屋)가 있다.}}}''' || '''{{{#FFFFFF 토호신사에서 찍은 사진. 토호신사가 없었다면 제2활주로가 소형기 전용이 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 * [[https://www.google.com/maps/place/Narita+International+Airport/@35.7767362,140.3979839,1026m/data=!3m1!1e3!4m5!3m4!1s0x0:0xd56e29a162771aa1!8m2!3d35.7719867!4d140.3928501?hl=en-US|터미널 남동쪽에 있는, 역시 민가로 가로막혀 활주로가 되다 만 토막난 유도로.]] 원래 이게 현 B활주로의 일부였어야 했는데, 중간에 민가가 가로막고 있다. '''한술 더 떠서, 이 민가가 자리잡은 곳에 있는 밭에서 땅콩을 키워다가 가공하는 공장을 급조해뒀다'''. 어떻게든 저 민가라도 매입한다면 활주로가 될 수는 있어 보인다. '''대신 B활주로의 유도로가 끊기지만. ''' 그나마도, 3,200m 활주로를 건설하려던 원 계획 (300m짜리 아스팔트 덩어리 + B활주로) 자체가 [[http://www.page.sannet.ne.jp/km_iwata/yatimata.html|인근 도시인 야치마타시의 소음 유발 문제와 더불어 무기한 연기된 상태라고 한다.]] 이런 알박기 때문에 예정되었던 제2, 제3활주로는 제대로 건설할 수 없었고 우여곡절 끝에 개항한 공항은 결국 A활주로(16R/34L) '''단 1개의 활주로'''라는 너무나도 부족하다 못해 [[도쿄도|도쿄]]의 관문이라고 하기에는 민망할 정도의 활주로만 보유한 상태로 개항하게 된다. 2002년이 되어서야 B활주로가 완공되었지만 그나마도 2,180m로 짧아도 너무 짧아서, 2009년에 2,500m로 확장하고 토호신사 바깥으로 크게 돌아가는 동쪽 유도로가 뚫리기 전까지는 사실상 활주로 하나로 '''24년''', 실질적으로는 '''31년'''을 버텨 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착륙 용량은 2002년 이전 14만회, 2002년 B활주로 개통으로 20만 회, 2009년 동쪽 유도로 개통으로 25만 회까지 늘렸으며 2015년에는 30만 회로 늘어났다.[* 감이 잘 안온다면 [[인천국제공항|인천공항]]과 비교를 하면 된다. 현재 인천공항의 활주로는 제1, 제2, 제4활주로가 3750m, 가장 긴 제3활주로가 4,000m다.] 이런 주변 조건으로 인한 기형적인 구조로 인해 나리타 공항은 정시성과 물류 경쟁력을 말아먹을 수밖에 없었다. 기본적으로 나리타는 국제선 공항이고, 더구나 주된 이용객인 일본 항공사들도 대형기를 애용하기에, 과거 나리타 공항은 [[보잉 767]] 이상 중대형기 이착륙이 90% 이상을 차지하는 상황이었다. 그런데 그나마 대체 활주로인 B활주로는 짧아서 중소형 항공기만 이착륙할 수 있고, 777 이상의 중대형 항공기는 대부분 A활주로에서 이착륙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때문에 A활주로만 폐쇄되어도 나리타 공항 전체가 거의 마비된다. 실제로 2009년 3월 23일 [[FedEx]]의 [[MD-11]] 화물기가 [[페덱스 익스프레스 80편 착륙실패사고|강풍이 불던 상황에서 A활주로에 착륙을 시도하다가 왼쪽으로 엎어지면서 폭발하는 사고]]가 발생하자, '''60여 편'''의 항공편이 결항·회항하였다. 굳이 위와 같이 대형 결항·결항 사태까지는 아니더라도 한번이라도 항공기 지연이 발생할 경우 그 뒤에 출도착하는 항공기까지 줄줄이 지연하게 되는 사태가 종종 발생한다. 특히 착륙할 때보다 이륙할 때 활주로의 길이가 중요한지라[* 착륙할 때보다 이륙할 때 더 긴 활주로가 필요하다.] 활주로 부족으로 인한 지연은 도착편보다 출발편에서 더 문제가 된다. 심지어 한 비행기 앞에 수십 대의 항공기가 이륙을 기다려서 게이트를 떠난 후 1시간 넘게 승객이고 승무원이고 꼼짝못하고 유도로에서 대기하는 사태도 흔치 않지만 일어나곤 한다. 여기에 터미널과 A활주로의 동선이 길어서 항공기가 활주로에 착륙한 뒤 탑승교로 이동하는 택싱(Taxing)에 소요되는 시간이 늘어나는 단점이 존재한다. [[도쿄 국제공항|하네다]]가 활주로를 4개, [[인천국제공항]]이 활주로를 4개 보유하고 있고[* 현재 제4활주로가 완공되고 나머지 3개의 활주로가 차례대로 재포장 공사가 진행되고 있으며 최종적으로는 5개의 활주로를 보유할 예정이다. 공항 동쪽에 위치한 골프장 클럽72CC 자리가 5활주로 부지로 예정된 곳이다.] 평행활주로 사이를 최대한 직선으로 잇도록 유도로가 만들어져 택싱에 소요되는 시간이 10분 내외임과 대조적으로 나리타의 경우 도착 터미널에 무관하게 대부분의 항공기가 크게 동떨어진 B활주로에 착륙한 다음[* 여기서 예외인 것은 사실상 화물기와 [[A380]]뿐이다. 여객형 747 정도는 웬만하면 B활주로로 유도한다.] 원래 C활주로용으로 조성된 유도로를 거쳤다가 다시 A활주로로 이륙하는 경로를 타면서 '''기본 20분''' 정도 걸려 평균 10분 정도 더 걸리는 상황이다. 여기에 저가항공 전용 터미널인 제3터미널에서 이륙하는 경우 '''10분 추가.''' [[제주항공]]의 인천-나리타 소요시간이 이전보다 유독 길어진 듯하다면, 그건 착각이 아니라 사실이다.[* 제3터미널은 탑승 브리지가 없어서 여기를 이용하는 항공사의 항공기를 타려면 체크인 후 J자로 돌아서 보안 검색대에 진입하고, 보안 검색대를 지나면 계단을 올라가서 출국 심사를 받는다. 이후 정면에 있는 면세점 쇼핑을 한 후 오른쪽 구석 계단을 따라 1층으로 내려와서 걷거나 버스를 타고 탑승장으로 간다. 이 때문에 승객 취급 자체도 오래 걸리고, 승객이 모두 올라타고 출입문을 닫고도 관제탑에서 지시가 내려올 때까지 대기해야 하는데 그게 최소 10분이다.] 거기에 지역 주민들의 반대 투쟁은 '''아직도''' 진행 중이라서, 언제 나타날지 모르는 반대파의 공격을 막기 위해 나리타 공항에는 '''휴전 국가인 [[대한민국]]에도 얼마 없는 경비원들이 [[무진장]] 깔려 있다'''. 심지어 2015년까지는 나리타 공항을 방문하는 모든 승객을 대상으로 신분증을 검사하는 검문이 이루어졌었다. [[나리타 공항역]] 개찰구를 지나면 있는 보안 검색대같은 구조물이 그 흔적이다. 그 밖에도 이용하는 사람이 상대적으로 적지만 JR로 나리타 공항에 들어오는 경우[* JR은 [[치바역]]을 경유하여 시간이 오래 걸리기 때문에 케이세이 전철에 비해 이용객이 1/3 정도에 불과하다.] 철길 주변이 모두 철조망으로 둘러싸여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공항반대투쟁에 전문적으로 대응하기 위해 공항경비조직인 '''지바현 경찰 나리타 국제공항 경비대'''(千葉県警察成田国際空港警備隊)가 1978년 600명의 인원으로 창설되었으나 다음해, 기존인원의 2배인 '''1,500명 체제'''로 증강되어 2018년까지 유지되었다. 하지만 세월이 흘러 나리타 공항개항으로 인해서 나리타시와 주변지역의 발전상이 뚜렷해지고 공항반대투쟁에 참여했던 주민들 또한 여행을 위해 나리타공항을 이용하게 되고 공항 관련기업에 취업하는 등 수혜와 혜택을 보게되자 저항은 급격히 줄어들었으며 2010년대에 들어 반대투쟁이 사실상 종말에 가까워짐에 따라 2018년 12월에 인원을 1500명에서 1,000명으로 줄이는 조직개편을 발표했으며 대테러 인원을 증강함과 동시에, 평시경비인원을 절반으로 줄이는 개편을 단행했다. 2020년에는 1978년 나리타 공항 개항당시 창설인원 600명에 근접한 '''750명 체제'''로 줄어들었다. 이 반대 투쟁을 다룬 대표적인 작품으로는 오제 아키라의 [[우리마을 이야기]]가 있다. 한편 나리타 국제공항을 반면교사로 삼은 일본 정부는 이후 토지 보상 문제를 원천적으로 피하기 위해 아예 공항들을 인공섬에 짓게 되었다. 오사카에 있는 [[간사이 국제공항]]이 그 대표적인 예. 그러나 간사이공항은 중복인프라 문제와 지반침하 문제로 인해 매년 천문학적인 비용이 발생하고 있으며, 바다와 가까운 인공섬의 특성상 2018년 [[제비(2018년 태풍)|태풍 제비]]로 인해 연락교가 끊겨 공항기능이 마비되는 등의 문제가 일어나고 있다. 2023년 2월에도 또한번 무력 충돌이 있었다. [[https://www.news1.kr/articles/?4955460|日 나리타 공항서 농민-경찰 무력 충돌…부지 인도 강제집행]]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